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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동호목사님의 날마다 기막힌 새벽 (유튜브링크는 하단 참조)

 

사도행전 3장 1절 ~ 10절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은과 금"을 넘어 스스로 걷게 하는 기적: 자립 선교가 보여준 진정한 사랑의 기술

1. 도입부: 왜 우리의 선의는 종종 제자리걸음일까?

매년 전 세계 빈곤 지역으로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구호 물자와 기부금이 흘러 들어갑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질문해 봅시다. 과연 그 물길이 닿은 곳마다 가난의 굴레가 끊어지고 있습니까? 굶주린 이에게 빵을 건네는 '구제'는 숭고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평생 빵을 기다리는 수혜자로 머물게 한다면 우리는 '도움의 역설'을 마주하게 됩니다.

성경 사도행전 3장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이에게 베드로가 건넨 파격적인 선언이 등장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여기서 '은과 금'은 당장의 생존을 위한 1차적 구호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기술은 그가 자신의 발로 세상을 딛고 서는 '자립', 즉 '일어나 걷는 것'에 있습니다. 단순히 물질을 나누는 안도감을 넘어, 한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치열하고도 정교한 자립의 메커니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립선교

2. [사례 1] 남산 쪽방촌의 기적: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만든 반전

서울 남산 쪽방촌에서 진행된 '미천나눔 운동'은 자립이 단순한 동정심이 아닌 '시스템 설계'의 영역임을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입니다. 초기 이 사업은 자립 의지가 있는 주민에게 1인당 300만 원씩 소액을 대출해 주는 전형적인 마이크로크레딧 방식을 취했으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실패의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3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구축하기엔 **임계 질량(Critical Mass)**이 턱없이 부족한 자본이었고, 무엇보다 빈곤의 본질인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홀로 남겨진 소액 자본은 가혹한 시장 경제의 벽 앞에 무력했습니다.

이에 전략을 대폭 수정하여 개인 중심에서 공동체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습니다. 12명을 한 팀으로 묶고, 총 6,000만 원의 자본금을 투입하여 규모의 경제와 사회적 책임망을 구축했습니다.

  • 김밥 천국: 12명의 팀원이 공동 운영하며 서로의 성실함을 견인한 결과, 운영 1년 만에 대출금 6,000만 원 전액 상환이라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 이동 세차: 마이크로벤 2대를 구입해 전문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여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감동은 그다음 단계에서 완성됩니다. 공동체를 통해 회수된 6,000만 원은 다시 팀 내에서 가장 성실했던 팀원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이를 밑천 삼아 **'우렁쌈밥집'**을 창업하며 완전한 개인 자립에 성공했습니다. **"빈곤은 고립이며, 자립은 관계의 회복"**이라는 통찰이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3. [사례 2] 쓰레기 산의 아이들, 대학교수급 전문가가 되다

캄보디아 단커 마을의 변화는 자립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가 '기술의 품격'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곳 아이들은 온 가족이 쓰레기 산을 뒤지며 악취 속에서 하루를 보내던 이들이었습니다. 에스겔 선교회는 이들에게 단순한 일거리가 아닌,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전수하기로 했습니다.

단순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헤어 살롱 원장급 마스터들이 직접 현지로 건너가 프리미엄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쓰레기 산의 악취에서 벗어나 최고급 살롱의 향기 속에서 전문직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아이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 과거: 온 가족이 쓰레기를 주워 하루 종일 일해도 겨우 5달러 수입으로 연명.
  • 현재: 한국 최고 수준의 기술 습득 후 최고급 미용실 취업. 월수입 약 400달러 달성 (현지 대학교수 수준의 고소득).

이들은 이제 구걸하는 수혜자가 아니라, 타인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전문가로서 사회적 존엄성을 회복했습니다.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기술'의 전수가 어떻게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4. 글로벌 확산: 말라위에서 탈북자 자립까지

이러한 자립 모델은 국경과 대상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며 '삶으로 증명하는 하나님 나라'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 말라위 구물리라 마을: 주민 스스로 모은 자본금에 재단이 자금을 더하는 매칭 펀드(Matching Funds) 모델의 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주민들이 사업의 주체가 되어 빵 가게와 목공소를 운영하며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 성장했습니다.
  • 탈북자 지원: 라면 프랜차이즈 등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지원했습니다. 탈북 10년 만에 본인의 아파트를 마련하는 등, 이들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 당당한 시민으로 정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BAM(Business As Mission)**의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전도 구호보다 더 강력한 복음은, 무너진 삶의 기반을 비즈니스로 복원하여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아주는 비즈니스 자체가 곧 가장 숭고한 선교입니다.

5. 고찰: 자립은 구제보다 훨씬 더 '비싸고 어렵다'

사회 혁신적 관점에서 볼 때, 자립 지원은 일회성 구제보다 훨씬 높은 기회비용과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왜 자립 선교가 '고난도 전문가의 영역'인지 세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막대한 자본과 기회비용: 빵 한 덩이를 주는 것보다, 시장에서 생존 가능한 비즈니스 인프라(밑천)를 구축하고 교육하는 데는 훨씬 많은 자본과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2. 시행착오의 리스크 관리: 남산의 초기 사례처럼 비즈니스 모델은 실패의 위험이 큽니다. 이를 수정하고 보완하며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정교한 전략과 정서적 에너지가 필수적입니다.
  3. 전문성의 격차: 시장은 냉혹합니다. 전문가가 결합된 고도의 기술 교육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립은 구호에 그치는 '취미 활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기에 자립을 돕는 일은 실패의 위험까지 기꺼이 짊어지겠다는 '전략적 사랑'의 결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6. 결론: 이제 우리는 무엇을 '밑천'으로 내어줄 것인가?

진정한 자비는 상대방을 영원한 수혜자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는 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은과 금'의 단계를 넘어, 적절한 규모의 자본(밑천)과 공동체적 시스템, 그리고 시장에서 통하는 최고급 기술이 결합될 때 비로소 "일어나 걸으라"는 기적은 현실이 됩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은과 금을 쥐여주는 안도감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가 다시는 굽히지 않고 걷도록 삶의 밑천을 함께 만들 것인가?"

우리의 선의가 그들의 내일을 바꾸는 진정한 동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밑천'이 되어주기 위해 애쓰는 여러분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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