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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동호목사님의 날마다 기막힌 새벽 (유튜브링크는 하단 참조)

 

사도행전 2장 43절 ~ 47절

  1.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2.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3.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5.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세상의 불공평함 속에 숨겨진 '생명의 코드': 말라위에서 발견한 역설적 희망

우리는 왜 불공평함에 분노하며, 그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운명적인 불균형 앞에 종종 무력감을 느낍니다. 누군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풍요를 누리지만, 누군가는 태어남과 동시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극심한 빈부 격차, 그리고 건강과 기회의 불평등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분노를 자아내게 합니다. 이 어긋난 질서는 마치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은 불편하고도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 세상이 완벽하게 평평하다면, 그곳에 과연 '생명'이 살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모든 생명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불공평함', 즉 '차이'가 존재할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내용의 통찰에 따르면, 불공평함이 있어야만 흐름이 발생하고, 그 흐름이야말로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동력이 됩니다.

생명의코드

격차, 생명을 태동시키는 필연적인 기울기

자연의 섭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저장단(高低長短)과 강약의 조화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알 수 있습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대지를 적시고, 공기는 기압의 차이에 의해 이동하며 바람을 일으킵니다. 우리 몸의 피 역시 압력의 고저에 따라 전신을 순환하며 생명을 지탱합니다. 만약 세상에 높낮이가 없고 기압의 차이가 사라진다면, 모든 흐름은 멈추고 생태계는 정지된 죽음의 상태에 빠질 것입니다.

경제와 사회 구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차이'는 단순히 제거해야 할 악이 아니라, 무언가를 흐르게 하기 위한 '잠재적 에너지'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강한 자에게서 약한 자에게로 자원이 이동하는 '순행'의 원리가 작동할 때, 그 사회는 비로소 건강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즉, 격차 그 자체가 비극이 아니라, 그 격차를 이용해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느냐가 한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입니다.

사망의 역행과 생명의 순행, 그 운명적인 갈림길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의 흐름을 목격합니다. 이 흐름의 방향성이 공동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먼저 '사망의 흐름'이라 불리는 역행적 성격이 있습니다. 이는 약한 데서 강한 데로, 가난한 데서 부한 데로 자본이 쏠리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입니다. 우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이 비정한 흐름을 뼈아프게 경험했습니다. 살인적인 고금리 정책 속에서 가난한 이들의 피땀 어린 돈은 이자가 되어 부유한 이들의 금고로 흘러 들어갔고, 공동체의 허리는 끊어졌습니다. 이는 욕심이 만들어낸 부자연스러운 역류였습니다.

반면, '생명의 흐름'은 강한 데서 약한 데로 흐르는 사랑의 순행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던 초대교회의 '통용' 문화가 그 찬란한 모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권리로 주장하지 않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원을 흘려보냈습니다. 이러한 건강한 순환이 일어날 때 공동체 안에는 기쁨과 순전한 마음이 넘치게 됩니다.

"사망의 흐름은 약자의 것을 강자가 취하는 욕심의 역행인 반면, 생명의 흐름은 강자가 약자에게 흘려보내는 사랑의 순행입니다."

구물리라에서 마주한 경제의 선순환, '요셉 프로젝트'

이러한 생명의 흐름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정교한 경제 구조로 실현해낸 현장이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 말라위의 구물리라 마을에서 진행된 '요셉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시혜적 구호를 넘어, 기존의 착취적 고리대금 구조를 '생명의 설계'로 완전히 뒤바꾸었습니다.

과거 주민들은 추수기에 헐값에 옥수수를 팔고, 정작 배고픈 보릿고개에는 5배나 비싼 가격에 사야 하는 악순환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요셉 프로젝트는 이 왜곡된 기울기를 바로잡기 위해 재단이 시세보다 50% 높은 가격으로 옥수수를 수매하고, 흉년에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약 33%의 수익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마을에 재투자하여, 월 50~70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를 50여 개나 창출했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코이카(KOICA)의 지원으로 설립된 '농기구 뱅크'는 도구가 없어 노동력을 낭비하던 주민들에게 장비를 대여해주고 수확 후 비용을 갚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이러한 '비즈니스적 선교 모델'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굶주림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Korea"를 외치며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고, 떠나려 했던 주부들은 "이제 이곳에 정착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강자의 자원을 낮은 곳으로 흘려보냈을 때, 무너졌던 공동체가 사회적·영적으로 소생되는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가시화된 것입니다.

영적해방

움켜쥔 손을 펴게 하는 영적 해방의 신비

사실 강한 자가 자신의 것을 약한 자에게 흘려보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사회 평론가이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단순한 도덕적 결단이 아닌 '가치관의 근본적인 전복'이 필요합니다.

신학적 용어로 이를 '성령 체험'이라 부릅니다. 성령을 통해 세상보다 거대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자원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서 해방됩니다. 욕심이 사라진 자리는 "꼭 쥐고 있던 손"을 펴게 만듭니다. 내가 가진 자원을 내 소유라는 감옥에 가두지 않고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낼 때, 비로소 정체되었던 공동체에 생명의 맥박이 뛰기 시작합니다. 움켜쥔 손을 펴는 행위야말로 성령 받은 증거를 삶으로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경제적 실천입니다.

에스겔의 강물처럼, 이제 우리가 흘려보낼 차례입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흐름의 수혜자'입니다. 과거 우리가 가장 가난했을 때, UN과 국제사회가 보내온 생명의 흐름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받은 그 '흐름의 빚'을 갚아야 할 시간입니다.

현재 활동 중인 '에스겔 선교회'의 정신처럼,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닿는 곳마다 죽었던 것들이 소성(蘇醒)되는 환상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거창한 전략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을 아끼는 작은 실천이 말라위 누군가에게는 생명의 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손에 꽉 쥐고 있는 그 자원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낮은 곳으로, 약한 곳으로 흘려보내기로 결단하는 순간, 당신의 삶과 주변에는 진정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펼 때, 비로소 세상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https://youtu.be/XJFHKUDf_gY?si=81vcrRf-Z7HFKV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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