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17절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70대에도 '전성기'로 사는 사람들의 비밀: 세상이 '미친 짓'이라 부르는 믿음에 관하여
서론: 왜 우리는 풍요 속에서 길을 잃는가
우리는 구독 서비스와 배달 앱으로 가득 찬 삶을 영위하지만, 각종 설문조사는 한 세대가 자신의 가장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역설입니다. 만약 돈과 세상의 풍요가 인간에게 진정한 꿈과 환상을 줄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모두 꿈속에서 살아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이 모순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소망과 삶의 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놀랍고도 역설적인 해답을 탐구합니다. 세상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성기'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강력한 믿음의 원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가장 위대한 시작은 '무모한 돌 던지기'에서 온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만드는 믿음의 여정은, 맹목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영적 통찰을 얻은 후의 행동은 종종 세상의 눈에 무모한 '간척 사업'처럼 보입니다. 망망대해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행위를 상상해 보십시오. 돌은 그저 '풍덩' 소리를 내며 사라질 뿐, 바다는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무모해 보이는 행위를 20년, 30년간 꾸준히 지속하면 어떻게 될까요? 보이지 않던 바닷속에서 돌들이 쌓여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마침내 파도가 넘실대던 바다는 단단한 '육지'라는 '실상과 증거'로 변모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작동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꾸준히 '순종의 돌'을 던질 때,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결과와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통념 속에서 이 비유는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진정한 창조는 눈앞의 성과가 아니라, 시간과 인내를 통해 증명되는 거룩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첫걸음은 종종 세상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요구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엉뚱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 혹은 **‘새 술에 취한 사람의 미친 짓’**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2. 인생의 '전성기'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전성기는 젊은 시절 단 한 번뿐이며,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과거의 영광에 머물거나 지나간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이끄실 내일과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정점'을 궁금해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의 산물이 아니라, '늙은이도 꿈을 꾸리라'는 약속을 삶으로 증명하시는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이자 초자연적인 결과입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40대도, 60대도, 80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은 새로운 전성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글의 영감이 된 저자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일이 보이고 꿈을 꾸고 있다"고 고백하며, 이 원리가 실제 삶의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삶, 그렇다면 이토록 강력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놀랍게도 우리 욕망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에 있습니다.
3. 가장 강력한 동기는 '거룩한 욕심'이다
많은 사람이 영적인 공허함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설적이게도 그 근본 원인은 '간절함'의 부족에 있고, 그 간절함이 없는 이유는 우리의 욕심이 온통 엉뚱한 곳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성공, 물질적 풍요에는 애타게 매달리면서도 영적인 세계에는 무관심합니다. 더 큰 비극은, 하나님이 가장 주고 싶어 하시는 선물인 성령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욕심의 방향'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욕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에 대해 뜨거운 욕심과 갈망을 가져야 한다는 통찰입니다.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욕심'이라는 단어를 영적 성장의 동력으로 재해석한 이 관점은 실로 놀랍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향한 마음은 복잡한 지식이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저자의 아들이 친구들처럼 은사를 받지 못하자 속상한 마음에 옥상 바닥에서 뒹굴며 떼를 쓰듯 기도했던 것처럼, 순수한 갈망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때 비로소 영적인 문이 열립니다. 바로 이 '거룩한 욕심'이 마침내 우리의 영적 시야를 열어, 환경이 아닌 '보는 것'이 현실을 결정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4. 당신의 현실은 환경이 아니라 '보는 것'이 결정한다
우리의 행복과 절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은 경제적 조건이나 사회적 위치 같은 외부 환경이 전부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라는 다른 현실을 체득한 사람들은 다르게 말합니다. 이들은 다른 현실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다른 현실을 '살아냅니다'.
이들에게 현실은 통장 잔고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로 정의됩니다. 이 내면의 비전이 외부 세계보다 더 실재가 되어, 마침내 환경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실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높은 산, 거친 들, 초막이나 궁궐 같은 세상의 형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더 나은 환경을 갖기 위해 분투하지만, 환경이 나아져도 내면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소망과 안정감이 환경의 변화가 아닌 내면의 관점 변화, 즉 '보는 것'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내면의 힘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결론: 당신의 바다는 어디입니까?
70대에도 청년처럼 꿈을 꾸며 '전성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밀은 하나의 강력한 경로로 요약됩니다. 그들은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영적 회복에서 삶의 동력을 찾습니다.
세상이 '미친 짓'이라 부를지라도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고 '믿음의 간척'을 시작하는 용기에서 출발하여, 그 여정을 '거룩한 욕심'으로 불태우고, 마침내 환경이 아닌 '보는 것'이 현실을 결정하는 확신에 이르는 삶. 그리고 그 결과로 과거가 아닌 미래의 정점을 향한 '평생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릴 때 시작되는 삶의 기적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이라는 바다에, 비록 지금은 무모해 보일지라도 미래의 육지를 위해 던져야 할 '순종의 돌'은 무엇입니까? 그 첫 번째 돌을 던지는 순간, 당신의 새로운 전성기는 이미 시작됩니다.
https://youtu.be/G2LjPHbRKJE?si=hM46CvzC6J0A_5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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