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김동호목사님의 날마다 기막힌 새벽 (유튜브링크는 하단 참조)
사도행전 2장 21절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당신의 기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3가지 역설
서론: 기도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
기도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의무처럼 느껴지거나, 아무런 감흥 없는 독백처럼 공허하게 흩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유창하고 거룩한 기도를 드려야만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장 깊은 기도의 신비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언어가 가장 화려할 때가 아니라, 모든 언어를 잃어버린 침묵의 순간에 찾아옵니다.
한 평생 목회에 헌신한 목회자의 깊은 묵상 속에서 건져 올린, 우리의 기도 생활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놀랍고 역설적인 3가지 통찰을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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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하는' 기도보다 '진실한' 기도가 중요하다
기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기도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줍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아니라, ‘사람들 들으라고’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 서서 큰 소리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인인지 자랑했습니다. 십일조와 금식 같은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고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라며 다른 이와 비교하며 우월감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과시욕을 아셨기에, 그 기도를 진정한 기도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골방'의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들으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힘은 유창함이나 길이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 안에도 기도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싶은 바리새인의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내려놓고 단순함과 진실함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소통을 여는 첫걸음입니다.
2. 때로는 '부르짖음'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
한 평생 전통적인 장로교 목회자로 살아온 김동호 목사님은 어느 날 순복음교회 집회에 초청받았던 경험을 나누며,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예배 스타일에 당황한 것입니다. 찬송은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불렀고, 사람들은 큰 소리로 손뼉을 치며 "주여 삼창"을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를 잘못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뜨거운 부르짖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저들의 마음 밭이 참 부드럽구나. 저렇게 부르짖고 큰소리로 뜨겁게 하는 동안에 마음 밭이 잘 갈아진 것 같더라고요.
이 경험은 기도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기도의 핵심은 진실함이지만, 그 표현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부르짖음이, 우리도 모르게 쌓아온 형식주의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 앞에 감정의 중심까지 쏟아놓게 하는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동기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3.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가장 완벽한 기도가 시작된다
살다 보면 너무 큰 고통에 압도되어 기도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도문 한 줄 쓸 수 없으며, 숨쉬기조차 버거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죄가 되기에 참고 견딜 뿐’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만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 기도의 가장 위대하고 해방적인 진리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런 순간에는 억지로 유창한 기도를 쥐어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가장 단순한 행위, 그것 자체가 완전하고 완벽한 기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약속을 들려줍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것이 왜 그토록 강력할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입을 열기 전부터 우리의 필요를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문장이나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주여"라는 짧은 부르짖음 안에는 우리의 모든 고통과 절박함,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송의 고백처럼, "하나님 외에는 제게 아무런 도움이 없습니다"라는 가장 정직한 선언입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약속은 우리의 상태나 자격과 상관없이, 가장 비참한 순간에 있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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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기도는 증명이 아니라 고백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나의 신앙을 증명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화려한 언변이나 뜨거운 형식으로 포장된 퍼포먼스도 아닙니다. 기도는 그저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진실한 행위 그 자체입니다.
조용한 골방에서 드리는 진실한 고백이든, 굳은 마음을 깨뜨리는 뜨거운 부르짖음이든, 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터져 나오는 침묵의 이름 부름이든, 가장 가치 있는 기도는 "하나님, 당신 밖에는 나의 도움이 없습니다"라고 정직하게 시인하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만약 오늘부터 기도를 '잘해야 하는 과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으로 여긴다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https://youtu.be/2EuGwEMbz5c?si=VFoz08-jHfRDqUx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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