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5절 ~ 13절
-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 어쩌면 최고의 칭찬일지 모릅니다: 성령에 취해 산다는 것의 4가지 역설
Introduction: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취해' 산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 즉 '취하여'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저는 주벽이 있는 아버지 때문에 '취한다'는 것에 본능적인 공포와 혐오감을 가졌습니다. 제정신을 잃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모습은 제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술주정이 아니라, 존경하는 어른이 가장 온전해야 할 '정신'을 잃어버리는 모습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의식적으로 '취하는' 것을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제 삶 역시 열정적인 '취함'의 순간들로 가득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파괴가 아닌 생명을 향해 있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입니다. 운동에 취해 점심을 거르고 6시간씩 테니스를 치기도 했고, 음악에 취해 밤을 새우며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느낄 만큼의 감동에 젖기도 했습니다. 좋은 책 한 권에 취해 완전히 소화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고 다른 이에게 가르치며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님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깊고 완전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몰입의 대상은 무엇일까요? 만약 인생을 가장 온전히 사는 방법이, 전혀 다른 무언가에 '취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바로 '성령에 취한다'는 이 급진적이고도 본질적인 개념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1. 역설 1: 당신이 '제정신'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왜곡된 상태일 수 있다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역설부터 시작해 봅시다.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말하는 '제정신'은 사실 죄로 인해 타락하고 왜곡된 상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뒤바뀌어 버린 정신 상태 말입니다.
이에 반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제정신'은 세상적인 의미의 멀쩡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나 비로소 회복된 상태, 즉 하나님의 정신과 영, 그리고 그분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쌓아 올린 지혜와 상식의 기반을 흔드는 선언입니다. 나의 가장 합리적인 판단조차 죄의 중력에 이끌려 왜곡되었을 수 있음을 인정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도전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시작입니다. 나의 정신이 아닌, 하나님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2. 역설 2: 인생을 망치는 중독 vs. 삶을 살리는 몰입
세상에는 두 종류의 '취함'이 있습니다. 하나는 파괴적인 중독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몰입입니다.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세상적인 중독은 사람의 제정신을 잃게 하고, 엉뚱한 말을 내뱉게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과 공포를 안겨줍니다. 그 끝은 결국 인생의 파멸입니다.
하지만 성령에 취하는 것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세상적인 욕심과 돈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삶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 유익을 줍니다.
세상의 눈에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진정한 제정신'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죄로 인해 뒤바뀐 가치관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영과 마음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른 정신으로 사는 법입니다.
3. 역설 3: 세상의 보물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된다
'성령에 취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가치관의 근본적인 혁명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120명의 제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한 그들은 이전까지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돈과 세상적인 성공을 '배설물'처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치관의 혁명은 곧장 삶의 방식으로 흘러넘쳤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자, 자신의 것을 나누는 '유무상통'은 의무가 아닌 가장 기쁘고 당연한 삶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세상이 '취했다'고 비난했던 그 모습이야말로 그들이 '진정한 제정신'을 되찾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4. 역설 4: 믿는 것이 아니라 '맛보아' 알아야 한다
이 거룩한 취함은 의무감으로 가득한 건성 신앙으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머리로 믿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맛보아 아는' 체험적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테니스의 짜릿한 '맛'을 알아야 점심도 거르고 여섯 시간을 뛸 수 있고, 음악의 깊은 '맛'을 알아야 밤을 새워 몰입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것의 진짜 '맛'을 깊이 경험해야만 평생 하나님께 취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을까요? 제 삶을 통해 붙잡게 된 몇 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 말씀에 취하기: 말씀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될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나아가 다른 이에게 가르쳐보십시오. 지식으로만 머물던 말씀이 나의 영과 삶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찬양에 취하기: 밤을 새워 찬양에 깊이 몰입하는 '철야 찬양'과 같이,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은혜에만 젖어 드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이는 신앙의 근간을 세우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 기도에 매달리기: 자신의 연약함이나 한계 앞에서 물러서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을 붙들고, 때로는 고집스럽다 싶을 만큼 하나님께 매달리며 돌파를 구할 때, 우리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게 됩니다.
Conclusion: 당신의 삶은 무엇에 취해 있습니까?
진정한 영적 삶이란 모든 종류의 취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올바른 대상에 제대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안에서의 깊은 몰입이며, 이 몰입은 죄로 왜곡된 우리를 '진정한 제정신'으로 회복시키고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성령에 취한 삶은 세상의 눈에는 이상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가장 온전한 현실인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내는 가장 실제적인 길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당신을 파괴적인 중독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을 살리는 거룩한 몰입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https://youtu.be/GT_uNUSngsA?si=URXahlwpHg4d23bb
'기독교 > 날마다 기막힌 새벽_김동호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75] 실상과 증거를 가진 믿음의 증인 (1) | 2026.02.02 |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73]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이라 (0) | 2026.01.30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72] 기도가 막힐 때 (0) | 2026.01.29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71]구하라 그리하면 성령을 주시리라 (0) | 2026.01.29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69]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 (2) | 2026.01.28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68]] 불의한 돈의 유혹과 최후 (0) | 2026.01.28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66]]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0) | 2026.01.28 |
| 날마다 기막힌 새벽 [#2065] 하나님을 사랑함 (0) | 2026.01.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