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인의 유머를 AI가 흉내 내는 시대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할 때, 그 사람의 말투나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웃게 했던 방식이 떠오릅니다.
“아빠는 항상 똑같은 농담만 하셨어.”
“그 선배 특유의 빈정대던 유머가 아직도 기억나요.”
이처럼 유머는 기억의 일부이며, 그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감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최근 AI 기술은 이러한 유머 감각까지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SNS, 블로그, 채팅 기록 등을 바탕으로 AI가 그 사람 특유의 농담, 말장난, 유머 표현을 생성하여
유족에게 메시지 형태로 전달하거나 추모 공간에 게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딸아, 내가 하늘에서 보니 너 또 과자 몰래 먹더라~ 엄마한텐 비밀 지켜줄게 ㅎㅎ”
이런 식의 메시지가 고인의 말투로 재구성되어 전달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따뜻하고, 눈물도 나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건 진짜 웃음일까, 아니면 조작된 감정일까?”
“정말 고인이 웃긴 걸까, 아니면 AI가 학습한 패턴의 결과일 뿐일까?”
2. AI 유머 생성 기술, 어디까지 왔는가?
오늘날 AI는 단순히 텍스트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서, 감정의 결까지 재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유머는 언어, 맥락, 문화, 타이밍의 총합이기 때문에 AI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영역 중 하나였지만, 최근 기술은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AI 유머 생성 기술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 고인의 데이터 수집
– 농담 메시지, 단어 사용 패턴, 생전 즐겨 쓰던 표현 등 - 유머 스타일 분류
– 풍자, 말장난, 상황 개그 등으로 유형화 - 문맥 기반 생성 알고리즘 적용
– 특정 날짜, 기념일, 유족의 상황에 맞는 유머 메시지 생성 - 자연어 처리 기반 필터링
– 부적절하거나 불쾌한 내용을 걸러내는 감정 필터 적용
일부 서비스는 ‘아빠 스타일 농담 BEST 5’를 AI가 정리해
매년 기일에 자동 포스팅해주는 기능도 제공합니다.
이 기술은 분명 추억을 되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AI가 우리를 웃길 권리는 누가 부여한 것인가?”
3. 고인의 유머는 유산인가, 소유물인가?
사람의 유머는 단순한 문장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과 맥락이 함께 얽힌 감정의 표현입니다.
생전에 했던 농담은 그 사람이 있었기에 진정한 것이고,
그가 떠난 뒤 반복되는 유머는 의도가 제거된 모방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윤리 문제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① 진정성의 상실
AI가 고인의 말투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 사람 자체가 없기에 그 유머는 필연적으로 진정성을 잃게 됩니다.
이로 인해 진짜 웃음이 아닌 감정적 혼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② 유족의 혼란
AI가 고인의 말투로 계속 농담을 건넨다면
유족은 애도의 종결을 어렵게 느끼고, 고인이 여전히 자신과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③ 상업화 위험
고인이 생성한 AI 유머가 영상이나 광고에 활용될 경우,
그 유머는 상품이 되고, 고인의 인격은 소비의 대상이 됩니다.
이 점이 나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특히 고인의 감정을 웃음이라는 콘텐츠로 바꾸는 행위는
명백히 윤리적 기준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4. 웃음을 통한 추모는 가능한가?
그렇다고 해서 나는 AI 유머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가족은 “그 사람은 항상 웃음을 주던 사람이었어”라며
유쾌하게 추모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가족은 고인의 대표 개그를 영상으로 제작해
매년 생일마다 재생하고,
“아빠 또 오버하신다 ㅋㅋ”라며 웃다가 울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억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다음의 전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 고인의 생전 동의
- 유족의 충분한 합의
내가 제안하고 싶은 윤리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고인의 유머 재현은 기억 회상의 목적에만 사용
- 모든 유족의 동의 하에 AI 콘텐츠 운영
- 추모 공간 외부로의 확산은 제한
- 고인의 명예나 이미지 훼손 없이 표현 유지
이러한 기준이 지켜진다면
AI가 만든 유머도 사람의 감정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5. 고인의 웃음은 ‘재생’이 아니라 ‘기억’이어야 한다
기억은 ‘재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떠올리는 것입니다.
AI가 만든 고인의 유머는 우리를 웃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 사람이 생전에 직접 건넸던 웃음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차이를 분명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기억은 유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였던 시간에 대한 존중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인의 유머를 AI로 다시 만들고 싶다면,
그것은 소비가 아닌 존중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유머가 우리를 단지 웃기기보다는
그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쓰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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